건설경제신문 [기고] 김영란법 이후 달라진 풍경 > 공지사항

커뮤니티센터

공지사항

건설경제신문 [기고] 김영란법 이후 달라진 풍경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작성일 : 16-12-28 13:41 조회8,029회 댓글0건

본문

가을이다! 모교에서 체육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재학 중엔 흙바닥이었던 운동장이 인조 잔디 구장으로 산뜻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운동장 주변에 20여개의 전공별 텐트가 정렬하여 맞이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대학원 원장님과 전공별 주임교수님들도 모두 참석하였고 부모님을 모시고 온 원우, 부인 또는 남편 그리고 자녀를 동반한 원우들로 인하여 분위기가 매우 밝고 활력이 넘쳤다.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과 막걸리, 음료수, 다과 등 풍성한 먹거리가 준비되었고 모두가 덕담을 나누며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그런데 식사가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문제의 발단은 김영란법이었다.

주임교수가 졸업생과 원우들이 권하는 막걸리나 과일, 음료 등을 드시지 않겠다는 것이다. 학교 측에서 제공한 것 외에 원우들이 준비한 일체의 식음료나 선물 등을 받지 말라는 학교 측의 지침을 반드시 준수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회비로 준비한 대가성 없는 행사 진행용 음식이며, 엄연히 가족 동반 잔치이기도 한데 이렇게 즐기는 걸 거부하는 것이 김영란법 입법 취지는 아닐 것이라며 함께 먹고 즐기는 걸 권유하고 또 권유하였다. 하지만 주임교수는 한사코 거부하였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주임교수는 자리를 떴다. 연구실에 들렀다가 폐회식 때 다시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도 불편하고 미안도 하다. 그러나 학교의 지침을 어길 수 없고 시범 케이스로 걸리지 말자는 것이 당사자들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청탁금지법의 입법 의도는 좋다. 그리고 그 결과도 좋을 것을 소망도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최근 내가 전에 근무했던 직장에서 건설한 공공 시설물을 견학하러 갔다. 10여명의 전직 임원들이 모여서 재임 시 고뇌하며 열정을 바쳐 설계, 시공한 시설물이 퇴임 후 준공되어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보도나 이야기는 많이 듣지만 정작 우리들은 차일피일 미루다 견학할 기회가 없었다. 가을소풍 겸 그 시설을 보러 가기로 했다.

가게 되면 후배들이 안내를 할 테니 행사를 마치고 막걸리 한 잔 나누며 회사 소식도 듣고 격려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김영란법이 번뜩 떠올랐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며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후배들의 편함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우리는 피자 한 판도, 막걸리 한 잔도 권하기 어렵다. 그런 우리의 뒷모습은 겸연쩍게 보일 것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는 대략 20세부터 25세 정도 이전에는 일반인이었다가 그 이후 공직자, 교육자, 언론인 등 직장인으로 살며 사회적 공인이 되었다가 60세가 되면 다시 일반인으로 회귀한다. 김영란법은 이러한 일반인을 적어도 예비(잠재) 범법자로 상정하고 과거의 직장 동료, 후배들과 분리시키는 선을 그어 놓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든다는 법의 취지는 백번 옳지만, 결과적으로 사회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인간관계마저 단절하며 살 수밖에 없다면 그것이 과연 우리를 행복한 사회로 인도하는 길인지…. 내 부족한 소견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